만기친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방법

예로부터 큰 인물은 위임을 잘 했나 봅니다. 공자는 “높고도 높구나! 순임금과 우임금은 천하를 가졌어도 관여하지 않음이여.”라며 우임금과 순임금의 위임을 칭송하였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순임금과 우임금은 훌륭한 리더라는 말이죠. 그런데, ‘관여하지 않음’은 훌륭한 리더의 덕목이기만 할 뿐일까요? 노자는 “성인(聖人)은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기 때문에 성과를 낸다.▼▼”고 했습니다. 공자와 노자의 말을 종합해 보면 ‘위임하기’는 성과를 내는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논어(論語)』. 태백(泰伯).
▼▼『도덕경(道德經)』. 제22장.

위임, 성과 창출의 필요충분조건

첫째, 리더 혼자 다 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리더는 큰일(대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큰일은 많은 일들이 뒷받침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 많은 일을 리더가 몸소 일일이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맹자는 ‘위정자가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기쁘게 해 주려면 매일 해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리더가 개별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의 이러한 한계를 초월하여 큰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는 한은 – 많은 사람들을 그 큰일에 참여시켜 이끄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큰일을 하려면 일이 아니라 사람을 이끄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맹자(孟子)』. 이루(離婁) 하(下).

둘째, 리더의 책임에 빈틈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리더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막중하다는 것은 책임이 무겁다는 것인데요. 사실 그 무게는 책임의 깊이보다는 넓이에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일컬을 때 흔히 ‘커버(cover)한다’는 표현을 쓰는데요. 그 책임을 테이블을 덮어 보호하는 테이블보에 비유하자면, 테이블보는 가능한 한 얇고 넓게 펼쳐져 테이블 전체를 덮는 것이 좋습니다. 즉 리더는 막중한 책임을 보다 넓게 커버하고 구체적인 사안은 부하에게 맡기는 편이 현명합니다. 그러나 만약 리더가 어떤 특정 사안에 지나치게 몰두하게 되면 반드시 제대로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깁니다. 마치 테이블보가 테이블에 나 있는 어떤 구멍으로 빠져들 때 테이블에 벗겨지는 부분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테이블보가 구멍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테이블에서 덮이지 않고 드러나는 부분은 더 커집니다.

셋째, 리더가 다 잘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혁신 방안, 문제 해결 방안, 새로운 사업 기회를 미리 알 수 있거나 원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출중한 리더라도 그렇습니다. 사실 문제와 대안, 기회를 잘 발견하는 것은 사람의 역량보다는 위치나 입장에 좌우될 가능성이 큽니다. 즉 현장에 가까이 있는 부하직원들이 문제를 더 잘 인식하며, 그 대안과 새로운 기회를 더 잘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는 리더의 능력과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이른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리더라면 이들에게 문제를 해결하고 정답을 마련하며 기회를 낚아챌 수 있도록 필요한 권한을 부여해야 마땅합니다. 그것이 리더의 눈과 귀, 나아가 두뇌를 확장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위임이 잘 안 되는 이유

성과에 대한 위임의 영향이 이렇게 명백한데도, 적지 않은 리더들이 이를 거슬러 만기친람(萬機親覽; micromanaging)의 함정에 빠집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하의 능력을 못 믿어서, 리더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고 등등, 이유야 많겠지만, 이 글에서는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해보려는 리더조차도 이 함정에 쉽게 빠지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이사회의 위임이 강한 이사회와 강한 CEO, 나아가 강한 단체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함을 역설한 존 카버는 『변화를 이끄는 이사회』에서, 이사회가 CEO나 사무국에 위임하지 못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카버에 따르면, 단체의 목적을 탐색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이사회 본연의 영역보다는 실무를 수행하는 사무국 영역의 일이 보다 흥미롭고 역동적이기 때문에 이사회 구성원은 사무국의 일에 개입하고 싶어 한다고 합니다. 단체의 최상위 리더십 본연의 역할이 훨씬 중요하지만, 실제로 결과가 발생하고 변화가 구현되는 가슴 설레는 공간은 사무국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이사가 특정 분야에 개인적인 관심을 갖고 있거나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면 사무국 영역에 개입하려는 경향이 더 강해집니다.

꼭 흥미 때문만이 아니라, 꿈과 미래와 비전을 생각하는 성과의 근원이 되지만 가시적인 변화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리더십의 영역보다 실제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성과가 구현되는 실무 영역이 더 중요해 보이는 것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중요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업무를 챙기는 것이 부하를 배려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개입이 벌어집니다. 법이나 규정 때문에, 혹은 리더의 상사가 내리는 지시 – ‘좀 잘 챙겨’ – 때문에 개입이 강제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리더가 ‘꼼꼼히 챙기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까요? 일일이 지시받는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게 됩니다. 대신에 지시하는 사람에게 판단과 결정을 넘길 것입니다. 리더가 할 일은 더 많아집니다. 시간은 더 부족해지고 에너지는 더 빨리 소진됩니다. 선의의 개입이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켜 더 깊은 개입을 부르게 되는 현상, 즉 상쇄 피드백(compensating feedback)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학습하는 조직』 97~98쪽.

모두가 행복해지는 위임 잘하는 방법

리더가 위와 같은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리더의 바른 자리를 지키면서 부하직원의 일을 부하직원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카버가 제안하는 방법은 부하직원과 리더 사이에 경계를 확실히 하는 방법입니다. 이 원칙을 카버는 “좋은 울타리가 좋은 이웃을 만든다(Good fences make good neighbors)”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리더는 자신이 위임받은 목적에 따라 부하직원에게 기대하는 방침을 지시합니다. 이 방침에는 부하직원에게 기대하는 목표, 그리고 부하직원이 넘지 않기를 바라는 ‘안 되는 수단’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이 합리적인 한, 기대하는 목표를 부하직원이 어떻게 해석하든, ‘안 되는 수단’이 아닌 한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간여하지 않습니다. 부하직원이 이러한 위임에 따라 일을 수행했는데 의도한 성과가 나오지 않거나 원치 않는 방법이 사용된다면 그 때에는 방침을 좀 더 자세히 지시합니다. 여기서 ‘좀 더 자세히’가 중요한데, 이 말은 기존의 지시보다 한 단계 정도만 구체적으로 지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매우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일이 발생하면 부하직원은 자신이 위임받은 권한이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되어 수단 선택에 제한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김종명은 『리더, 절대 바쁘지 마라』에서, 리더는 직접 일하려 하지 말고 평소에 리더가 이끄는 조직의 시스템을 잘 관찰하여 부하직원들이 일을 잘 하게 만드는 방법을 구축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난한 집에 제사 돌아오듯’ 일에 치이는 악순환에 빠져 ‘평생토록 허덕이며 소처럼 죽어라 일만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팀 패리스는 『나는 4시간만 일한다』에서 이 시스템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는데요. 리더가 이끄는 조직 내에서 리더의 역할이 ‘모든 일이 리더를 거쳐야 하는 요금 징수소’가 아니라 ‘길가에 서 있다가 필요하면 끼어드는 경찰관’ 역할을 하도록 업무시스템을 설계하라고 조언합니다.

부하직원으로부터 칭송받으면서 큰일을 이루는 방법, 그야말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 아닐까요?

참고자료

  • 공자 외(김형찬 옮김). 『논어(論語)』. 홍익출판사(2005).
  • 김종명. 『리더, 절대 바쁘지 마라』. 에디터(2013).
  • 맹자(박경환 옮김). 『맹자(孟子)』. 홍익출판사(2005).
  • 존 카버(구미화 옮김). 『변화를 이끄는 이사회』(원제 : Boards That Make A Difference). 나남(2021).
  • 최진석. 『노자의 목소리로 읽는 도덕경』. 소나무(2001).
  • 팀 패리스(최원형, 윤동준 옮김). 『나는 4시간만 일한다』(원제 : The 4 Hour Workweek). 다른상상(2017).
  • 피터 센게(강혜정 옮김). 『학습하는 조직』(원제 : The Fifth Discipline). 에이지21(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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