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의 미래

여러분이 어느 회사에 직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거쳤던 과정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대개는 지원자가 그 회사와 모집하려는 자리에 적임자임을 호소할 만한 <입사지원 서류>를 제출하고(서류전형), 서류전형에 통과한 다음 면접을 거쳐 채용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를 위해 지원자는 먼저 회사의 비전, 미션, 인재상 등을 확인합니다. 어떤 사람을 뽑고 싶어 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죠. 이후 지원자는 자신이 회사의 비전, 미션, 인재상 등에 부응하는 적임자라는 근거가 될 만한 자료들을 모읍니다. 여기에는 성장과정, 생각, 경력, 자격 등에 관한 자료가 포함됩니다. 적임자라는 주장과 근거 자료를 담은 <입사지원 서류>가 채택되면 지원자는 면접의 기회를 얻습니다. 면접에 임하는 지원자는 <입사지원 서류>의 주장을 직접 말로 전달할 기회를 얻게 되며,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자료들의 신뢰성을 확인하려는 면접관의 질문에 답변합니다. 본인이 가장 적합한 사람임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지원자가 합격의 영광을 누립니다.

공정성이 보다 중요해지는, 수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공공기관 혹은 대기업에서는 이 과정이 보다 촘촘해지고, 각 과정에서 재량적 판단보다는 수량화된 점수가 산술적으로 합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밖의 경우라면 오직 한 가지 기준이 적용됩니다. ‘얼마나 적합한 사람(right person)인가.’ 이 사실을 잘 설득하기 위하여 누군가는 경력을, 누군가는 토익 점수를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특정하지 않는 한, 어떤 것을 내세울 것인지는 지원자의 뜻에 달렸습니다.

유세遊說와 과거課擧

회사에 ‘내가 적임자이니 나를 채용해 달라’고 제안하는 이런 방식은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시대는 중국이 여러 나라로 나뉘어 경쟁하고 다투면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취하고[弱肉强食], 어제의 적국과 동맹국이 내일이면 뒤바뀌는[合從連橫] 급박한 상황이 오래도록 이어지던 시절입니다. 각 나라가 이러한 환경에서 도태되지 않으며, 주도권을 잡고 나아가 천하를 안정시키려면 다양한 방책이 필요하였습니다. 상황은 자고 일어나면 바뀌니 정답이 따로 있을 리 없었죠. 이 때 천하의 인재들[諸子]이 저마다 그 방책[百家]을 내세우니 이를 <제자백가>라고 합니다.

천하의 인재들(제자백가)은 각국의 군주(고용주)들을 찾아다니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자신만의 비책을 설파하며 채용을 제안했으니, 이를 ‘유세(遊說)’라고 하였습니다. 인재들은 그들에게 각 나라의 상황을 진단하고 자신의 아이디어가 그 나라의 상황을 타개할 적합한 방법임을 설득하였습니다. 군주가 그 아이디어를 채택하면 곧 채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최종 승자는 진(秦)나라가 되었으나 그 뒤로 오랫동안 분열과 통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공자에서 맹자로 이어지는 유학 이데올로기는 비록 춘추전국시대에는 찬밥신세였으나, 진나라 다음으로 통일 제국이 된 한(漢)나라와 그 이후에는 제국의 경영에 있어서 ‘정답’이 되었습니다. 천하가 차츰 안정되면서 제국의 운영 방법이나 이에 필요한 우수한 인재에는 ‘정답’이 있게 되었죠. 수(隨)나라 때부터는 인재들이 저마다 ‘정답’을 유세하는 이전의 ‘수시채용’ 방식을 벗어나, 국가가 정한 ‘정답’을 잘 아는 인재를 선발하는 ‘공채’방식, 즉 ‘과거(科擧; 당시에는 선거(選擧))’가 시작되었습니다.

과거는 이전보다 진일보한 방법, 종전의 유세나 음서(蔭敍)보다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인재를 평가하고 선발하는 방법인 듯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과거와 같은 방식은 국가 운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이와 결합하여 주어진 소임을 잘 수행할 만한 풍부한 인재가 있을 때에만 유지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국가 운영 시스템이 무너진 난세에는 인재 자체가 부족하기도 하겠거니와, 안정된 시스템을 전제로 육성된 인재만으로는 국가 운영이 어렵게 됩니다. 난세에 영웅이 출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MBO BSC KPI … 수단을 제한하는 평가 장치

다시 현대로 돌아와 보죠. 기업을 비롯한 현대의 조직에는 다양한 평가 장치들이 있습니다. 회사는 목적과, 그 목적에 이르는 정답을 알고 있고, 직원들은 정답에 해당하는 수단을 충실히 이행하는지에 따라 평가됩니다. 이것은 분명 이전의 주먹구구식 평가, 연줄이나 편견에 좌우되는 평가에 비해 진일보한 방식입니다. 목표나 그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 방법이 확실하고 불변인 한, 이 방법은 전체 구성원을 목적으로 이끄는 강력하고도 확실하며 안전한 방법입니다.

비록 이세돌 9단에게 한 판 지기는 했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바둑에 관한 정답(“기보”)을 열심히 학습한 인공지능 <알파고>는 드디어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바둑의 신, <알파고 마스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알파고 마스터>에게도 적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알파고 제로>. 바둑의 규칙 말고는 정답을 전혀 학습하지 않고, 오로지 이기는 방법만을 찾는 데 몰두하는 <알파고 제로>는 <알파고 마스터>와 100번 싸워 89번 이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기업을 비롯한 조직이 처한 상황은 확실하고 불변인가요? 조직은 정답을 알고 있나요? 직원들보다 더 잘 알고 있을까요? 상사는 부하직원보다 더 잘 알까요? 대표는 일선보다 더 잘 알까요? 경험 많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잘 알까요? 아무 것도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조직의 목적이 달라지지야 않겠지만,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 달성하는 방법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조직의 목적은 어떻게 표현될 때 가장 적절한가,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가. 사실 현대적인 평가장치를 셋업할 때조차도 조직은 그 답을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묻고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평가의 권한 또한 일하는 사람에게 넘겨주어도 좋지 않을까요? ‘유세’의 방법을 되살려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네요.

평가의 미래 : 카버의 모니터링

그런 방법이 있습니다. 카버의 모니터링은 채용에서만 가능한 줄 알았던 ‘유세’ 방식의 평가를 재직 중의 성과평가에 도입한 – 비록 CEO에 대한 이사회의 평가이기는 하나 – 천재적 방법입니다. 『변화를 이끄는 이사회』제6장 “강한 경영진이 필요한 강한 이사회”에서 소개한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니터링을 위해서 이사회는 우선 단체의 목적, 그리고 사무국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미리 정해두어야 합니다. 이를 <정책>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회사에 입사를 희망하는 지원자에게 비전, 미션, 인재상을 홈페이지를 통해 제시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평가는 결국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지 않으면서도 목적을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확인하는, 즉 사전에 표명된 이사회의 기대와 현상을 비교하는 일이 됩니다.

평가 대상이 되는 기간이 끝나면 CEO는 두 가지 점에서 평가에 대응하게 됩니다. 첫째, CEO는 이사회가 표명한 정책을 합리적으로 해석했음을 이사회에 입증합니다. 둘째, CEO는 그 해석이 실현되었음을 이사회에 입증합니다. 이러한 입증에는 근거 데이터를 사용합니다. 만일 둘 중 어느 하나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CEO는 이사회의 기대를 충족시켰음을 입증하는 데 실패한 것이 됩니다.

이러한 평가 방법은 이사회와 이사회의 권한을 위임받은 CEO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CEO와 그 부하직원, 나아가 모든 평가자와 피평가자 간의 관계로 충분히 확대 적용됩니다. 평가자는 피평가자에게 추구할 목적을 사전에 표명하고, 사후에 피평가자가 하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지만 판단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온전히 피평가자의 권한으로 넘깁니다. 목적을 측정 가능한 표현으로 구체화하는 일,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찾아내는 일, 그리고 그것을 측정하는 일을 피평가자의 전적인 권한으로 돌려놓는 겁니다. 어차피 먹히는 참신한 수단이 무엇인지 미리 알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음을 인정한다면, 이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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