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목적 중심으로 정책을 책임지는 비영리 거버넌스를 기대한다

정책 거버넌스 모형을 소개한 책, 『변화를 이끄는 이사회(Boards that make a difference)』 소개

50년이 넘도록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주제는 관심 대상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어느 한 주제를 택하고 이를 반세기 동안 연구하여 글을 쓰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주제가 열정과 헌신을 바칠만하다고 마음을 정하는 데까지 상당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을 정한 후에도 이를 지켜나가길 50여 년이나 한결같으려면 은퇴 나이를 한참 지나서까지 꾸준히 헌신해야 한다. 그러니, 청춘에서부터 백발에 이르는 그 세월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하다.

바로 존 카버(John Caver)와 그가 매진한 「정책 거버넌스(Policy Governance) 모델」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래서 비영리 부문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카버의 견해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반드시 한 번은 주의 깊게 이것을 살펴봐야 한다. 이번에 아름다운재단에서 그의 이런 일생의 열정을 담은 책 『Boards that make a difference(가제: 변화를 이끄는 이사회)』 한국어판을 출간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이 책의 매력은 이사회를 ‘사회적 구조물(social constructs)’의 하나로 본다는 점이다. 이 견해의 핵심은 조직이 ‘목적(꿈, 비전 등)’에 따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졌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부에 구조와 체계를 갖추고 그들 간에, 그리고 외부환경과도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적’이 정책이사회의 중심에 자리한다.

purpose라고 새겨진 나무 조각

이 책에 대한 기대와 비판

또한 사회적 구조물로서 이사회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탁월한 모습을 그려볼 수도 있다. 카버는 바로 그러한 이사회 모델로서 정책 이사회를 주창한다. 정책 이사회는 장기적 미래 관점을 가지면서도 단기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론적(철학적)이면서도 실용적이며, 외부에 있는 주인(owners, principals)의 가치를 받드는 한편으로 조직 내부 질서를 정립한다. 비영리단체 이사회로 가장 탁월하면서도 보편적인 모델이 바로 정책이사회라고 카버는 주장하면서 그 실현 사례까지 제시한다. 현실에서 구현되기만 한다면 참 매력적이면서도 강력한 것이 바로 정책이사회 중심의 「정책 거버넌스 모델」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모델은 비영리단체의 이사회 모델 중 가장 많은 오해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의 주장과 달리 이 모델은 이론과 철학에 치우쳐 단체의 현실을 무시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이 점을 의식했는지 카버는 이 책에서 한 개의 장을 할애하여 「정책 거버넌스 모델」에 대한 오해와 비판을 반박하고 있다 – 물론 일부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미국보다 발전이 한 발 늦은 한국의 비영리 이사회에 카버의 「정책 거버넌스 모델」을 적용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가 가장 궁금해 할 이 질문에 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서글픈 현실이지만, 카버가 통렬하게 비판하는 전통적인 미국 비영리단체 이사회의 행태가 우리나라 비영리단체라고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런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도 개선 노력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려 또한 없지 않다. 정책 수립이라는 본연의 역할은 물론 그밖에 감당해야 할 여러 역할 잘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비영리 이사회가 스스로 앞장서서 「정책 거버넌스 모델」을 도입하고 실현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카버의 우려대로 정책이사회가 뭔지도 모르면서 ‘우리 이사회는 정책이사회를 운영 중입니다.’라고 용감하게 무지를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 거버넌스 모델」의 도입이 열정적으로 일하는 비영리단체 CEO들의 역할을 제한하거나 대체하는 것은 아니라는 카버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오히려 이사회와 CEO가 서로의 역할을 확실히 하고 분담하고 협력함으로써 이른바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한다. 그밖에도 모든 것이 목적에서 시작해서 목적으로 끝난다는 명쾌한 기준, 문제는 이사회 운영이 아니라 이사회 설계에 있다는 주장, 단체의 경영기능을 다루는 정책이 아닌 가치와 관점에 근거를 둔 정책 수립의 필요성, 이사회 문제에는 개선보다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 등은 이 모델의 수용 여부를 떠나 가슴에 새겨 볼 대목이다. 물론 이사의 선정과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이나, 이사회의 보편적 원칙, 이사에게 필요한 자질 정리 등 곳곳에 들어있는 여러 가이드도 아주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카버의 말대로 ‘학술적 연구’를 통해 정책이사회의 효능을 검증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꿈대로 이사회가 비영리의 사회적 영향력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비하거나 기존의 이사회를 혁신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가 50년 동안 헌신하며 함께한 여러 이사회를 보면 근거 없는 꿈이 결코 아니다. 설령 당장 실현되지는 않더라도 이 책을 통해 이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로 비영리단체의 이사나 경영진이 채워지기를, 그리고 그런 꿈이 우리의 비영리에서도 점점 더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원규 | 비영리거버넌스연구소장

20년에 미치지는 않지만 나름 오랫동안 비영리단체 컨설팅에 몸담아 왔다. 모금컨설팅이 주 분야였지만 단체 정체성이나 전략, 프로그램 개발, 사회적 영향력 측정 등을 다루어 왔는데, 최근에는 단체의 거버넌스와 이사회 개선을 위한 연구조사에 힘쓰고 있다.
더 많은 비영리단체들이 건전하고 건강하게 자리 잡고 발전하여 이 세상이 살 맛 나는 곳이 되길 소망하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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