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부가 더 이상은 이렇게 외롭지 않았으면
모든 기부는 감정적이다. 금액은 상관없다. 월 만 원이건 수백억 원이건, 기부는 단순히 돈을 보내는 행위가 아니다. 아무리 소액을 보내더라도 기부자는 본인의 가치관과 목적에 부합하는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더 정확히는, 기부처가 아닌 사람(또는 동물, 신념, 활동 등)을 돕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기부처는 기부가 현금 제공이 아닌 무척이나 ‘감정적인 거래’임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을까? 이 책 『외로운 기부, 지난 10년간의 편지』는 기부자의 목적과 동기가 이해받지 못할 때, 기부가 얼마나 외로워질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이 책은 실패한 기부에 대한 기록이자, 국내 기부금 관련 첫 소송에 대한 기록이다. 개인 기부액으로 최고액인 305억이라는 기부금이 그 목적과 맞지 않게 사용되자 기부자와 기부처 사이에 벌어진 10년간의 법정 소송 과정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어마어마한 기부액, 국내 최정상 대학의 도덕적 해이, 법원의 허술한 태도가 먼저 들어왔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책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외로운’ 기부… 최고액, 최초 법정 소송, 성공한 기업인 기부자, 대학 기부처 같은 요소를 제하고 나서야, 결국 이토록 외로운 기부의 쓸쓸한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법적 분쟁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기 때문에 크게 지면을 할애하진 않았지만, 책 곳곳에 기부와 그 결과에 대한 저자의 후회, 실망, 분노,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다. 가난하게 자랐으나 자수성가한 기업인 부부가 평생 지녀온 교육과 국가 발전에 대한 신념, 본인의 고향 땅에서 공부하게 될 인재들을 뒷받침하고 싶다는 동기가 좌절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처절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성숙한 기부 문화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기부에 대한 보석 같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모든 기부에는 목적이나 동기가 있기 마련이고, 그 목적이나 동기는 기부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다. (12p.)
기부를 받는 측에서는 과연 기부자의 뜻을 온전하게 살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가, 행여 기부 자산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당초의 기부 목적이 무색해지는 방향으로 빗나가는 일은 없을까, 기부자의 뜻과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되새겨보아야 한다. (13p.)
기부자는 돈만 내면 그만인 ‘봉’이 결코 아니다. 기부자는 기부를 받는 기관과 지속적인 동반자로서의 유대 관계를 가지면서 수혜 기관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을 함께 경험하고 기뻐하는 존재다. (19p.)
모금 일을 하지만 나는 여러 단체의 성실한 후원자로서 매달 후원 알림을 받는다. 월 2만 원, 3만 원 정도 되는 소액이지만 알림을 받을 때마다 나는 저 먼 나라에서 억울하게 수감된 죄 없는 사람과, 뜬장에서 학대당하고 있는 강아지와, 환경과 기후정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활동가를 생각한다. 옆에 있어주고 싶은 마음, 더 돕지 못해 미안한 마음, 함께 한다는 자부심… 이런 감정이 전해지지 않고 월 3만 원짜리 현금으로만 여겨진다면 기부는 얼마나 외로운 경험이 될 것인가.
저자는 고통스럽고 실망스러운 과정을 기록하면서, 이 책이 반면교사로서 기부 문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저자의 마음이 기부 문화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묵직하게 전달되기를 희망하며, 이 책을 추천한다.
한보리 | DTV 코리아 대표
60초 안에 한 사람을 멋진 목적을 지지하는 열정적인 후원자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영상과 매체를 통해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키고 그 반응을 분석하면서 ‘이게 된다고?’와 ‘이게 왜 안 되지?’를 입에 달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