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처 선택도 주식 종목 고르듯
“나 주식 하나만 추천해줘.”
“요새 뭐가 괜찮아?”
주식 붐이 일면서 주식투자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주식투자를 처음 해 보는 사람들이 흔히 많이 하는 질문은 종목을 추천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름 주식의 고수라는 사람들이 ‘우량주’, ‘배당주’, ‘성장주’, ‘가치주’, ‘테마주’, ‘펀더멘탈’, ‘PER(주가-수익 비율)’ 등과 같은 기준을 가지고 종목을 추천해 줍니다.
기부에 입문하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나 기부처 하나만 추천해줘.”
“요새 어느 기부처가 괜찮아?”
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주식처럼 명확한 근거나 기준을 가지고 추천해 주기 어렵습니다. 왜냐? 주식과 같은 가이드나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현 저자(이하 ‘저자’)는 서문에서 “기부는 우리 사회를 위한 현명한 ‘투자’”라고 했습니다. 저 또한 매우 동감하는 표현입니다. 과거에 자선 기부는 주는 자와 받는 자가 명확히 구분되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옆집을, 단골집을 돕기 위한 기부가 활발해지면서 기부가 수혜자뿐만 아니라 기부자도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단체가 좋은 데 사용하겠지’라는 인식에서 ‘더 깐깐하게 기부처를 검증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점차 전환되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좋은 주식투자’처럼, ‘좋은 기부’라는 철학을 더 많이 공유하기 위해 나름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미 기부하고 있는 사람에게 저자가 제안하는 기준은 당연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기부 입문자의 고민을 덜어주는 데에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책의 내용이 누구에게나 정답은 아니겠지요. 100명의 기부자가 있으면 100개의 기부철학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두고 각자의 기부철학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해 본다면 기부문화 확산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제안하는 기부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왜(WHY)
모든 철학의 시작은 ‘왜’라는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왜 사람은 태어나서 고통받고 죽을까?’라는 의문에서 불교가 시작되었듯, 기부철학은 ‘왜 기부를 해야 하지?’라는 의문에서 시작합니다.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기부 관련 콘텐츠를 접합니다. 구세군 냄비, 사랑의 온도탑, 길거리 캠페인, NGO단체들의 TV광고, 사회공헌 뉴스, 연예인의 기부 등을 접하게 되면 한 번쯤 기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지금 내가 기부를 하고 있다면 왜 시작했는지, 하고 있지 않다면 왜 기부에 관심이 생겼는지 생각해볼까요. 이를 ‘명분’이라고 합니다. 동정심일 수도, 시민의식일 수도, 종교적 이유일 수도 있습니다.
저의 첫 기부는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였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지하철 역사 내에서 진행하는 캠페인에서 처음 신청했습니다. 월 1만원 정기후원에 참여 했었고 1년 정도 하다가 군 입대로 중단했습니다. 그 때 참여했던 건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한 번 정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나.’라는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소액기부로 월드쉐어, 해비타트를 후원하다 중단했습니다.
취업 이후에는 ‘시민으로서 당연히’라는 이유로 바뀌어 승가원, 세이브더칠드런, 네이버 해피빈, WWF에 현재까지 후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기부의 명분이 무엇이든 우리는 기부하는 행동 자체를 응원하는 문화가 필요하겠지요.(물론 범법자가 죄를 감형받기 위해 기부하는 행동은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무엇을(WHAT)
기부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자연스레 명분을 구체화합니다. ‘힐링’하고 싶다는 명분을 찾았다면 ‘여행’이라는 구체적 계획을 찾는 것처럼 말이지요. 기부에는 반드시 사업이 따라 옵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금, 재난으로 터전을 잃은 이들을 위한 긴급구호사업, 장애인을 위한 재활치료사업 등 대상이나 목적에 따라 다양합니다. 저자는 이런 사업들을 성격에 따라 구분했습니다.
사회적 차원 | 사회적 안전망 제공 | 긴급구호자금과 같이 예상하지 못한 위험으로부터 보호 |
복지의 사각지대 해소 | 행정적 한계로 국가가 책임지지 못한 부분을 민간영역이 담당 | |
다양하고 창의적인 복지 프로그램 개발 | 각 기관이 위치한 지역에 맞춘 프로그램 개발 | |
사회제도의 발전과 문화적 수준의 증진 |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기 위한 시설과 인재 개발을 지원 | |
국가 이미지 제고 | 해외 개발도상국의 자립을 도와 민간 외교의 역할을 수행 | |
개인적 차원 | 행복감 | 남을 돕는 행위로부터 얻게 되는 기쁨 |
성취감과 보람 | 기부 행위로 인한 변화의 모습과 성과에서 오는 보람 | |
소속감에서 오는 활력 | 같은 목적을 가진 이들과 후원회, 단체 행사, 봉사활동 등을 하면서 얻게 되는 주인의식 | |
사회적 존경 | 기부자에 대한 사회의 긍정적인 인식 |
내가 선호하는 성격의 기부 프로그램과 사업을 찾아 기부한다면 만족감이 매우 높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두고 사업을 하는 사장이라면 ‘지역에 맞는 복지프로그램+지역 봉사단 활동’의 만족도와 성과가 매우 클 것입니다.
셋째, 누가(WHO)
기부를 남의 돈으로 하거나 대출받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기부는 바로 ‘내’가 합니다. 권유는 할 수 있지만 신청은 결국 본인의 손으로 합니다. 그래서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나요.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면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처럼 주변에 기부를 공유할 만한 사람이 있다면 더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자녀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부모님, 유산기부에 미리 이야기하는 가족들, 배우자와 결혼 기념 기부, 친구와의 기부처 추천 등 기부를 하나의 이벤트처럼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벤트 전에 충분한 이야기가 되어야 하겠지요.
넷째, 언제(WHEN)
기부하기 가장 적절한 시기는 바로 ‘지금’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대부분은 소득이 있는 시기로 잡습니다. 우리나라 개인후원자는 소액정기후원으로 많이 시작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소득이 생기면 시작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꼭 정기후원이 아니더라도 물품후원, 재능기부, 펀딩, 기부연계물품 구입, 모발기부, 바자회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습니다.
올해 초 부산으로 이사를 가면서 집에 있는 물건들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중고 거래가 가능한 물건들은 중고로 처분 했지만 중고로 판매하기 애매한 얇은 이불류는 유기견 보호소로, 그릇과 책들은 아름다운가게로, 옷은 옷캔이라는 단체에 기부했습니다. 모금업무를 하는 저조차도 처음 들어보고 해 본 물품후원이었습니다. (물품후원도 기부금영수증 발급이 가능합니다.)
단체들도 획기적이고 재밌는 다양한 기부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기부자들이 직접 모금하기도 하지요. 그러니 고민하지 마시고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보세요. 금액이나 기간보다 중요한 건 실천이니까요.
다섯째, 어떻게(HOW)
투자에도 투자자만의 기준이 있듯, 기부에는 기준이 필요합니다. 기부도 기준이 없다면 관리가 어렵게 됩니다. 저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 원칙을 언급했습니다.
명확성 |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주도적으로 정하고 인지해야 합니다. |
안정성 | 나의 경제적 상황에 맞게 기부해야 합니다. |
지속성 | 기부금 전달 이후의 교류, 성과 보고 등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
공감성 |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알게 합니다. |
교감성 | 일방적인 전달 행위가 아닌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이 필요합니다. |
이와 다른 자기만의 원칙을 세울 수 있습니다. 저는 위 원칙에다 ‘영향력’이라는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환경은 전지구적 문제이기 때문에 가장 영향력이 큰 곳에 기부하고자 했고, 선택한 곳이 WWF였습니다.
기준이 정해졌다면 다음은 전달 방법을 정할 차례입니다. 저자는 여러 기부 방법들을 소개했습니다. 우리가 기부하면 떠오르는 금전적 기부부터, 부동산과 주식기부, 포인트 기부는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혹시 외국여행 후 미처 쓰지 못한 외국돈이 있다면 외국동전 기부도 가능합니다.
금전이 아닌 물품과 노동력도 기부 가능합니다. 아름다운가게에 물품을 기증하면 판매수익금으로 기부사업을 진행합니다. 유통기한이 남은 식품류는 각 지역에 위치한 푸드뱅크를 통해 취약계층에게 나눔 됩니다. 일반적인 봉사활동과 다르게 특별재난지역 자원봉사는 시간에 따라 연말정산 시 세제 혜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 녹음 기부, 헌혈과 모발 장기기증, 저작권 기부도 있습니다.
기부 방법과 전달 방식, 기부금 영수증 발급 여부는 단체에 문의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합니다.
여섯째, 어디서(WHERE)
기부 철학과 나에게 맞는 기부 방법을 찾았다면 마지막은 기부처를 찾는 것입니다.
큰 규모의 NGO는 주식으로 비유하자면 우량주입니다. 회계의 투명성, 사업의 안정성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NGO단체는 3만 개가 넘습니다. 개별 주식을 구매하기 어려운 투자자가 펀드에 투자하듯이, 개별 NGO단체를 찾기 어렵다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처럼 모금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의 단체는 인지도는 떨어질지 몰라도 모세혈관처럼 지역 곳곳에 스며들어 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단체가 있는지 하나도 몰라요.’라고 하시는 분이라면 네이버 해피빈, 카카오의 같이가치, 한국가이드스타에 들어가서 확인하는 방법도 추천합니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단체를 분류했습니다.
사회복지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
경제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정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치후원금센터 참여연대 |
문화예술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학술 및 교육 | 한국장학재단 모교 |
안전 | 대한적십자사 |
환경 및 동물 | 환경재단 녹색연합 |
의료 및 건강 | 국제백신연구소 병원 |
농어촌 | 농어촌희망재단 |
인권 | 국제앰네스티 |
지역사회 | 지역 복지시설 |
스포츠 | 국민건강진흥재단 |
역사 | 기념관 박물관 |
아동 및 청소년 | 초록우산어린이재단 |
노인 | 헬프에이지 |
장애인 | 한국장애인재단 |
여성 및 미혼모 | 한국여성의전화 |
다문화가정 | 무지개청소년센터 |
북한 | 남북하나재단 |
노숙인 | 한국구세군 |
희귀병 | 한국한센복지협회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
맘에 드는 단체를 발견했다면 기부하기 전에 확인할 요소가 있습니다.
미션과 비전 | 단체의 사명감과 앞으로의 활동 계획 |
투명성 | 기부금의 운용과 회계자료 공개 감사기구와 이사회의 운영 |
규모 | 전체 후원금 규모 직원들의 숫자와 전문성 역사 |
피드백 | 기부자 예우 및 소통 연차보고서, 사업결과보고서 등 후원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 |
‘기부는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제가 가진 기부철학입니다. 엔젤투자를 받은 유니콘 기업이 성공해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일조하듯, 지원 받은 아이가 성장해 다시 기부하는 선순환을 많이 봐왔습니다. 더 이상 기부는 돈 많은 사람이 하는 활동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었습니다. 그래서 기부 뒤에 ‘문화’가 붙었겠지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기부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여행 가이드북을 아무리 읽어도 실제 가본 사람만큼은 모르는 것처럼 말이지요. 기부자들의 기부문화 인식은 아주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만큼 단체들도 기부자들에 발맞춰 준비하고 있습니다. 더 깐깐하고 투명하게 회계를 집행하고, 기부자들이 더 편하고 재밌게 다가올 수 있도록 모금 프로그램도 만듭니다. 더 큰 기쁨을 느끼시도록 기부자 예우 프로그램도 다채롭게 준비합니다.
그러니 부담 없이 문의해 주세요. 지금까지 기부문화가 활발해지길 바라는 모금 담당자의 넋두리였습니다.
오성주 | 사회복지사이과 마인드를 가진 문과생으로, 역사를 좋아해 국사학자, 고고학자, 큐레이터를 꿈꾸다 현재 어린이 재단의 모금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5백 명의 후원을 개발하기 위해 3천 명에게 거절당한 사나이. |
오~ 이런 책이 있군요! 기부문화에 대한 가이드 북을 알게 되어 좋습니다.
글도 좋았지만 글쓴이 소개의 마지막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3천명.
안녕 하세요
나는 오성주 님에게 이 메일을 보내고 싶습니다.
모금담당자 ??? 이런 역활을 해보고 싶어서 입니다.
나는 미국에 살며, 78세 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기부문화에 대항 기본적인 사고력이 많이 부족한듯하여,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입니다.
부디 저에게 매일 주시기 바람니다.
유용한 책을 알게 되어, 상당히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