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하지 말라던 그 모든 것

30년 전이었던가. 직장 생활을 하던 나는 주말을 이용하여 자원봉사를 하려고 동사무소에 봉사활동을 신청했다. 당시는 ‘봉사’의 개념이 널리 인식되지도 않았고 봉사활동이 활발하지도 않았던 때여서, 상담을 받던 공무원도 접수 과정을 낯설어 했다. 접수를 마친 공무원은 자원봉사접수와 활동에 대한 지침을 위에서(?) 받지 못했다고 하면서 추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한다. 그 후 3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어도 그러려니 하였고 아예 신청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퇴근을 하고 대문을 들어서는데 엄마가 소리치기 시작하셨다.

“무슨 봉사는 봉사여? 니 집부터 돌봐. 집에 와서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으면서 뭐, 봉사? 니 에미가 이렇게 아파서 끙끙거리는데 그건 눈에 안 들어오고, 뭐, 봉사?”

동사무소 직원이 이번 주말에 봉사하러 나오라고 집으로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 전화를 받은 엄마는 퇴근하는 나를 향해 한바탕 욕을 퍼부으셨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숭고한 ‘인류애’를 이해하지 못하시는 엄마를 ‘인류애’로 이해하고 잘 설명 드렸어야 했는데, 당시 나는 막 대들면서 싸웠던 것 같다 – 인류애는 가족한테는 적용되지 않는다.

출처: pixabay.com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이 책을 읽는 내내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다. 과학, 정보기술, … 이런 것들과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엄마가 왜 떠올랐을까? 이 책은 과학이 증명하고 있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 담긴 과학적 태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는데,

실패 많이 해라.
틀려도 된다.
의심해라.
믿지 마라.
스승의 그림자를 밟아라.
쓸데없는 일 잔뜩 해라.
치열하게 살지 마라.
포기해도 된다.
잠 많이 자라.
중장기 계획 세우지 마라.
할 수 없는 것은 하지 마라.

이 모든 것들이 바로 우리 엄마가 하지 말라 하던 그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살면 밥 벌어먹지 못한다, 성공하지 못한다 하던 바로 그 지침들이다. 오늘날 과학의 눈부신 성장과 사회 경제 문화를 뒷받침하고 있는 많은 과학적 이론.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지닌 태도이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이 책에서는 그 과학적 근거와 결과를 제시한다.

엄마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고 했는데, 지나치게 잘 들었나? 그래서 사회적으로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지 못하였나? 사뭇 후회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부터라도 지금보다는 좀 더 잘 살고 싶다. ‘인류애’가 아니라 그냥 나만이라도 잘 살고 싶다. 그래서 앞으로 더 과학적 태도로 살 꺼다. 그런 목적을 지향하고 더 깊이 있게 책 후반부에 나열된 것들을 탐독했다.

공감하라.
다양성을 인정하라.
협력하라.
행동하라.
공생하라.

음, 이건 뭔가! 이것 역시 우리 엄마가 하지 말라던 ‘봉사활동’과 유사한, 주로 기부와 나눔의 정신을 이루는 것들 아닌가.

비단 이 책만이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학자가 ‘포스트 코로나’를 예측하고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데, 바로 협력하고 공생하라는 말을 한다. 준비할 수 없었던 집단 바이러스 감염사태에서도 결국 인간이 인간을 배려하고 협력하면서 잘 이겨내고 있다. 사람 사이의 안부와 위로가 우리를 견디게 하였으며, 봉사, 기부, 나눔으로 공동체를 살려나가고 있다.

‘더불어 잘 살기’가 미래 생활의 기술

이미 우리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 버린 4차 혁명의 시대. 현재와 다가올 미래 세상을 잘 살고 싶다면 사람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그 기술을 익히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과학적 태도가 바로 공감, 다양성 인정, 협력, 실천, 공생인 것이다. 우리 엄마가 하지 마라던 그것 말이다. AI, 정보 습득, 기술이용 등은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아마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흔한 일상이 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를 지키는 것은 AI, 과학기술 이런 것들이 아니라 이런 것들을 모르고 낯설어 하는 ‘우리’를 이해하고 다른 대안을 마련해 주는 이웃일 것이다.

나만 잘 살아서는 안 된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이웃과 지역이 잘 살아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잘 살아야 남이 보인다. 너무 힘들면 남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

정현경 | 작가

비영리컨설팅 월펌 수석연구원이며 한국모금가협회 전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모금가노트』, 『사회복지와 모금』, 『모금을 디자인하라』, 『한국의 모금가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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