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북스 워크숍 : 비영리단체의 윤리] 비영리단체를 위한 윤리학 입문 강의

나눔북스 제14권 “비영리단체의 윤리” 발간기념
특별교육 ‘윤리학 입문’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에서는 13년간 비영리단체의 대표를 지내고 비영리경영을 가르쳐 온 게리 M. 그로브먼의 저서 “비영리단체의 윤리”  출간을 맞아하여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 명예교수이신 박찬구 교수님을 모시고 윤리학 입문 강의를 2차례 진행하였습니다. 

비영리 투명성에 대한 불신이 계속 높아지는 현실 속에서 정부나 기부자 모두 투명성에 관한 많은 논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투명성에 관한 논의에 앞서 비영리 윤리에 관한 논의가 먼저 선행되어 야 하기 때문에 “비영리단체의 윤리”라는 책을 출판하였고 그 안의 철학적인 내용을 들여다 보는 ‘윤리입문 강의’를 준비하였습니다. 

총 2차례 걸쳐 진행된 입문강의를 통해 윤리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철학을 배우는 기회를 가졌으며 90%가 넘는 출석률을 통해 비영리 섹터에서 윤리가 매우 중요하면서도 논의가 필요한 이슈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강의를 해주신 서울대학교 윤리교육학과 명예교수이신 박찬구 교수님께서는 서울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 윤리교육과를 거쳐, 독일 튀빙겐(Tübingen) 대학교 철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교수님은 고등학교 윤리 교사와 대학 교수를 모두 경험하신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윤리적 소양을 기르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계십니다. 박찬구 교수님의 강의 내용과 강의에서 나온 질의응답에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비영리단체의 윤리에 관한 논의는 활동가들이 겪는 사례를 통해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좋은 의도와 또 다른 좋은 의도가 서로 부딪혔을때 이런 윤리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겪는 윤리적 이슈를 어떻게 바라봐야할까요? 윤리 이야기를 해보려면 우선 그 바탕에 깔려있는 철학부터 이야기해봐야합니다.

박찬구 교수님 강의 : 윤리학 입문, 현대윤리학의 핵심쟁점과 주요 이론 (강의 내용 요약)
영미 문화와 유럽문화는 매우 다릅니다. 그런데 나눔북스인 “비영리단체의 윤리”는 영미문학에 바탕을 둔 것으로 독일에서 말하는 윤리적 관점과는 다릅니다. 이 두 차이점을 최대한 짚어보면서 강의를 시작하겠습니다. 현대 윤리학의 주요이론은 상대주의, 이기주의, 쾌락주의, 동정심의 윤리, 공리중의, 칸트 의무론, 덕윤리로 간단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1. 상대주의
가장 흔히 나오는 문제입니다. 과연 문화의 상대주의는 도덕 상대주의를 함축합니까? 즉 문화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고 도덕은 문화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도덕도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러나 문화에 포함되는 도덕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세계에 속하지 않는 부분도 도덕에 포함됩니다.(형이상학) 노예제도나 인종차별에 대해 인정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해본다면 상대주의의 오류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상대주의에서 나오는 또다른 내용은 ‘관용에 대한 오해’입니다. 공공장소에서 음악을 크게 듣는 사람과 주위사람, 흡연권과 협연권의 대립의 이슈를 생각해보았을때 서로 다른 사람의 기준에 따라 나의 가치 기준에 잣대로 판단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이는 또한  ‘자유와 권리’라는 말의 오용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문화의 상대성을 ‘도덕의 상대성’과 혼동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타인을 존중하는 일종의 자기 희생정신이 함축되어 있으며 이는 ‘절대적 도덕적 가치에 대한 신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윤리는 필요악입니다. 어느시대에나 있으며 질서와 규칙체계를 담고 있는 것도 있고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도 있습니다. 즉 제도로서의 도덕 + 원리로서의 도덕 = 윤리학을 만들어 내는 것이며 이 개념을 혼동하여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2. 이기주의
우리가 도덕적으로 사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스스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현명한 상인의 덕목 즉 자기이익을 장기적으로 얻기 위해 인간은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도덕과 자기이익이 충돌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내일 전쟁이 일어나는데 나는 군입대를 해야하나? )
도덕적이라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자기이익 중심이라는 말과 반대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자기 희생이 따르더라도 따라야 하는 것이며 도덕은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 이해타산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3. 쾌락주의
남에게 도움을 주는데 쾌락을 느끼는 사람은 자비를 베푼다는 것입니다. 쾌락은 어떤 욕구가 충족될때 뒤따르는 심리적 상태입니다. 쾌락주의는 겉보기에는 이타적인 행위일지라도 사실 자기만족감이라는 동기가 그 안에 내포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인간 모든 행동의 목적이 쾌락일까요?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원해야 하며, 쾌락을 너무 의식하게 되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쾌락을 만들어 주는 기계가 있다면 평생 그 안에 들어가 살 수 있습니까? ) 쾌락을 의식하지 않은 중립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오히려 쾌락을 얻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4. 동정심의 윤리
타인과 나는 본질에 있어 하나라는 것입니다. 세계의 참모습은 ‘모든 영혼이 하나’라는 것에 있습니다. 동정심의 윤리를 이해하는데 쇼펜하우어의 말이 도움이 되겠습니다. ‘도덕적인 사람과 이기적인 사람의 차이는 자아의 크기 정도, 혹은 자기와 타인의 간격의 정도이다’.

5. 공리주의
쾌락주의, 합리적 이기주의에 보편주의 요구가 결합한 것입니다. 개인의 윤리보다는 사회의 윤리에 더 초점을 두고 있고 상인들의 모임(자본주의 사회)을 위한 윤리입니다. 각 개인들 간의 충돌이나 사익과 공익이 충돌할때 절충하기 위한 것으로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이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공리주의적 관점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1) 가치판단의 비약 : 모두가 쾌락을 추구한다고 모두가 쾌락을 추구해야 합니까? 모두가 거짓말을 하면 다 거짓말을 해야할까요?
2) 합리적 이기주의에서 오는 문제 : 사회전체의 쾌락을 추구하고 나 자신을 희생해야 할까요?
3) 결과계산의 문제 : 결과를 계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최대다수 행복을 측정할때 어떤 시점에서 누구를 중심으로 측정할 수 있나요?

이익이나 쾌락은 도덕적 근거가 될 수 있을가요? 자기 희생적 규범에 따라야할 이유를 왜 사랑, 신념, 정의가 아닌 이익이나 쾌락에서 찾으려 할까요? 이를 생각해본다면 공리주의의 한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리주의는 입법이나 공공정책 차원의 문제를 다루기에 적합합니다. 인간의 기본권 문제와는 충돌되는 개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6. 칸트의 의무론
이 세상 밖에서까지도 무제한적으로 선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의지뿐이라고 합니다. 도덕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어떠한 조건이 붙지 않는 것(정언명법) 입니다.

1) 형식주의 : 도덕법칙의 기능으로 우리 준칙이 보편화가 가능한 것인지 스스로 점검해보는 틀입니다. 점검시 자기모순이 일어나면 그 원리는 기각이 됩니다. 구체적인 행위 지침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2) 엄숙주의  :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도덕의 명령을 따르기 어렵지만 이를 의무로 항상 간직하고 있으며, 가능하려면 실행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3) 자율 : 자신의 의지는 어떤 외적 세력에 규정되지 않으며, 도덕적 법칙을 세우고 내면에 깃든 양심이 본능적 경향성을 조절할때 자유로운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경향성(본능적 욕구)에 따른 행위는 자유로운 행위가 아니며 욕구에 따른다면 욕구에 노예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약을 하는 것)
4) 인격과 인간의 존엄성 : 인격은 예지적 주체의 담지자로서 수단이 아닌 목적이며, 존엄이란 교환적 가치를 지닌 존재가 아닌 대체불가능한 절대적 가치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왜 도덕적이여야 할까요? 이와같은 질문은 의무론적 관점에서는 사이비 물음입니다. 마치 도덕적이어야 하는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처럼 묻고 있기 때문이지요. 도덕은 당위이며 현실이 아닌 이상입니다. 우리가 할일은 ‘도덕적으로 살아야할 도덕과 무관한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닌 도덕적 가치의 왕국을 향해 한발 내딛는 것입니다.

7. 덕윤리
근대 의무윤리(예시 : 최대다수 최대행복)에 대한 불만에서 나온 것으로 인간의 삶은 풍부하고 복자합기 때문에 윤리문제는 단일한 제1원리로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모델에 영향을 받아 ‘도덕성은 이론적 접근으로 해명될 수 없다’는 것이 전제입니다. 전통적 유교윤리는 이타주의 실행이 가능한 소규모 집단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윤리는 공동체가 매우 커지고 개개인의 이타심의 덕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적 감정보다 이성적 추론에 기대게 되고 행위보다는 행위자에 치우쳐 행위의 법칙, 규칙, 원리가 아닌 행위자의 성품, 성향, 동기에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근대 시민사회 패러다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바꿀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덕윤리의 장점을 사용할 수 있는 밖에 없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근대 윤리의 기본원칙 (자유, 평등, 인간존엄, 행복) 바탕 위에 덕윤리(타인 배려의 품성 교육 및 습관화 교육)가 수용되도록 해야합니다.

좀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윤리학입문_현대윤리학의 핵심 쟁점과 주요 이론_강의자료_발표PPT.pdf
윤리학입문_현대 윤리학의 핵심 쟁점과 주요 이론_강의자료_원문.pdf

<박찬구 교수님과 함께한 질의응답>

1. 교수님께서는 지금 우리 환경이 도덕적인 환경이라고 보십니까? 시민사회 활동가 입장에서 어떻게 환경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 우리 사회는 미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상인의 윤리(공리주의)가 가장 꽃피운 곳이지요. 반면 우리는 도덕의 왕국이였습니다. 물론 미국교육계 역시 혁명이 있었습니다. 자유주의적 교육을 하다보니 무규범적 학생이 생기기도 하였지요. 이것이 공동체를 흔든다고 보았고 덕윤리(모델링)가 강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프랭클린, 워싱턴이 강조되었고 덕목중심의 접근법을 시도하기 시작했지요. 저는 이런 사회에서 외롭게 사회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비영리와 같은 운동이라고 봅니다. 모델이 중요한데 바로 비영리 운동이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가난하지만 도덕적 신뢰를 보여주는 모델로서 비영리를 보고 있습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알지만 실행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비영리와 같이 진정으로 실천하여 이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2. 비영리현실을 보며 정책하는 사람들은 (K 스포츠재단, 어금니아빠사건등)비영리를 좀더 엄격한 기준에서 감독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갖고 있는 독점이윤은 전혀 통제할 의도가 없지요. 이런 구조에 대해 NPO 활동을 하는 우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일해야 할까요?
⇒ 영리추구와 윤리의 관계는 서로 상호 충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치 과학기술계에서 윤리가 필요하듯이 경영을 원활히 하기 위해 목적과 윤리 그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지요. 비영리기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윤리적 철학적 지침 없이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면 중독현상처럼 매몰되고 집착 속에서 큰 그림을 볼 수 없습니다. 윤리적 기준, 순수 담론 사고 훈련은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합니다. 균형감각이 살아있고 거대 담론에도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은 현실에 끌려다니지 않고 이 전체가 어디로 가야할지 볼 수 있습니다. 파생규범으로서의 윤리 뿐만 아니라 그 경영자체가 잘되어서 무엇을 하는 것인가? 도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순수한 윤리적 비전을 가진 사람이 적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아쉬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리적 비전을 갖고 우리도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해야 이런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3. 도덕과 윤리의 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 도덕은 인간이 마땅히 따라아할 도리입니다. 덕 내면에 쌓인 품성적 정의라고 볼 수 있지요. 윤리는 사람 모임의 이치입니다. 조직 속에서 인간이 마땅히 해야할 도리입니다. 도덕은 개개인이 깨달아 지녀야할 품성이며 윤리는 조직사회가 잘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4. 사업을 올바르게 잘 수행하고 있는 기관인데 소규모로 여력이 없어 회계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인력도 없고 기관명으로 된 통장도 없이 기관장의 개인 계좌로 재정을 관리하고 있는 기관이 있다고 가정해볼 때…. 이 기관의 기관장은 윤리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시나요?
⇒ 규정을 위배했다는 것은 도덕적 차원의 위배가 아닙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이는 모든 진정성을 폄하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 사회 언론의 윤리에 매우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팩트체크가 먼저 되어야 합니다. 어떤 동기에서 어떤 규모로 그것에 입각해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정직하게 팩트로서 보여주어야 하는데 실제로 가장 중요한 팩트를 안보여주고 일부를 가지고 문제를 크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는 도덕적 의지를 가지는 일에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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