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좌표를 확인하는 기부를 위하여

낯선 도로 위. 차가 고장났다. 여자는 차정비소 직원에게 현재의 위치를 전달하기 위해 발을 동동 굴린다. 안타깝게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한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아까 ‘밀양 5km’라는 표지판을 지나기는 했는데요. 네? 어서 왔냐고요? 아, 글쎄. 어서 왔드라.” 영화는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모르는,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여자의 상황으로 시작한다.

아. 글쎄. 어서 왔드라.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심리상담을 하는 영향일까. ‘기부’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밀양>은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삶의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다시 또 길을 새롭게 걷기 위해 인생이라는 공간에서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는 영화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후 소개하는 책에도 잘 설명이 되어있지만, 기부자도 삶의 여러 우여곡절을 겪고, 그 과정에서 모은 유무형의 자산을 사회에 소중히 환원한다.)

‘돈과 물건을 대가없이 준다’는 사전적 정의를 갖고 있는 기부도 삶의 나침반과 연관된다. 내 내면의 좌표를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욕망을 가지고 기부를 선택하는가’, ‘기부는 나의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가’, ‘기부가 내 삶의 어떤 면을 풍요롭게 하는가’의 주제들이 ‘내가 가진 것이 무엇인가’, ‘어디에 얼마나 전달하는가’의 문제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이 가졌을 때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라는 자원의 흐름이 어떻게 나와 우리의 관계맺기로 연결될까 하는 생각들이다. 이런 고민으로 만난 책이, 황신애 씨의 <나는 새해가 되면 유서를 쓴다>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상속의 시대, 유서로 발현되는 무거움과 가벼움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올 초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물론, ‘기부’가 책의 전반적인 흐름을 구성한다는 것도 모른 채, ‘유서’라는 단어에 끌려 책을 구매했다. 죽음의 심리적인 측면을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몇 권의 책을 고르던 터였다. 저자의 이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국내 제1호 고액모금 전문가로 총 5천억 원을 모금하는 등 20여 년간 펀드레이저로 일해왔다니. 그런 전문성을 갖춘 저자는 기부에 대해 다양한 측면을 쉽게 설명한다. 부자와 기부자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 고액의 기부금이 오갈 때 서툰 대응에서 오는 안타까운 사례, 우리나라의 척박한 기부문화, 더 나아가 앤드루 카네기, 워런 버핏, 리카싱, 빌게이츠, 테드 터너 등 해외 기부자들의 세계관과 사례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다루고 있다. / 무엇보다 저자는 이 시대를 ‘상속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그런 맥락에서 노년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준비하는 것들,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 삶에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다. 이 부분은 심리상담실에서 연령이 비교적 높은 내담자들이 자주 토로하는 고민들과 맞닿아 있으며, 책을 덮을 땐 나 또한 ‘내 삶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흐르고 있고, 어디로 흘렀으면’하는 마음을 담은 유서로 향하게 되었다.

유서를 쓰는 유언이란 행위에 담겨져 있는 심리적 측면을 조금 더 보자. 유언은 ‘유무형의 가치를 총망라해서 내가 일군 삶과 그 의미를 고스란히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이다. 저자는 유언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이벤트’라는 뜻의 ‘의식 ritural’, 즉 라틴어 ‘ritus’, ‘성스러운 관습’이라는 설명에 맞춰,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위해 묵은 생각을 덜어 내주는 의식의 효과와 연결된다는 것에 주목한다. 그래서 기력과 정신이 쇠한 순간이나, 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토해져 나오는 것들을 배재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지금까지의 인생을 차분히 돌아보며, 이후의 삶을 생각하며 종이에 차분히 써내려갈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쓰인 유언장은 나의 삶에 쉼표를 찍으며, 과거를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미래를 향해 다시 내딛는 것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죽음을 전제로 하였기에 무거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한한 인생을 다시 또 특별하게 만들어내며 날아오르는 듯한 가벼움을 선사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울을 보며 삶의 좌표를 확인하는 기부로

글의 초입에 꺼냈던 영화 <밀양>의 마지막이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멋진 음식을 제안한다. 그러나 여자는 미용실부터 가고 싶어 한다. 남자는 여자의 뜻에 따른다. 마주하는 것조차 고통인 과거의 사람을 미용사로 만난 여자는 자신이 직접 머리카락을 잘라내기를 결심한다. 정신없이 어수선한 마당에 자리를 잡는다. 작은 거울을 어지러운 마당 중간의 어느 곳에 두고, 허리를 어정쩡하게 구부리고 불편하게 머리를 조금씩 직접 잘라낸다. 남자가 대문을 열고 들어온다. “내가 들어줘도 되겠지에.” 멋쩍게.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웃으며, 거울을 올려 잡아든다. 남자의 담백한 도움을 여자는 무심한 듯, 자연스럽게 받는다. 거울의 위치가 바뀐 덕에 여자는 허리를 펴고 조금 더 세심하게 하던 행위를 계속 한다. 그렇게 잘린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려 그늘이었던 여자의 발밑에서 출발해 햇살이 드는 양지에 도착한다.

거울을 들어주는 남자는 기부자가 만나는 펀드레이저 등 다른 조력자들과 매우 흡사하게 보인다. 조력자의 전문적 도움과 주체의 적극적 의지를 거치면, 기부는 ‘돈이나 물건을 대가없이 주는 행위’라는 사전적 정의를 벗어나,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명확히 보고,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가장 적극적인 행위로 변환된다. 삶의 좌표는 챙길 수 있을 때 챙기는 것이 좋다. 그래서 저자의 말은 정확하다.

“유언장을 쓰기에 오늘보다 더 좋은 날은 없다.”고.

홍성희 | 정신분석센터 판도 대표

‘정신적으로 성숙한 개인이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든다’는 철학으로 정신분석센터 판도를 운영합니다. 다양한 조직의 구성원들과 리더를 포함하여 개인의 심층적인 심리상담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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