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사부, 허진이 씨의 단단한 삶

후후레터가 자립준비청년 사이에서 ‘자립사부’로 통하는 허진이 씨를 만났습니다. 또래 친구들보다 먼저 결혼과 출산, 육아를 경험한 진이 씨는 자신의 시행착오를 성실하게 공유하고 있어요. 자립준비청년들이 살면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모든 순간 앞에서 막막함을 조금 덜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개인적으로 중심이 단단한 진이 씨를 만나 나다움을 찾으려면 어떤 고민이 필요한지, 또 어떤 태도가 필요한지 힌트를 찾을 수 있었어요.

여러분도 진이 씨의 삶을 따라가며 한번쯤 고민해보는건 어떨까요? 나다운 자립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엄마 허진이의 삶을 세상에 이야기하는 이유

Q. 진이 씨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허진이입니다. 이제 30살이 되었고요. 33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열여덟 어른 캠페인 활동을 시작한지는 4년 정도 됐고요.

Q. 벌써 4년이 지나고 있다니 시간이 참 빠른데요. 당사자들이 얼굴을 노출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됐잖아요.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었을텐데 참여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A. 2019년 지인이었던 신선 씨가 열여덟 어른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을 봤어요. 당시만해도 제 이야기를 숨기기에 급급했던만큼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부럽더라고요. 그 해 연말에 선이 씨랑 함께 KBS ‘거리의 만찬’ 출연하게 된 것을 계기로 아름다운재단에서 캠페인 제안을 먼저 주셨어요. 당시 퇴소한 지 4~5년 됐을 때였는데 친구들 사이에 자립의 양극화가 심했어요. 아동양육시설은 자원이 제한되어있는데 저는 항상 지원을 많이 받은 편인 반면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캠페인 활동을 통해서 미안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게 됐어요.

딸 소이양과 허진이 씨
딸 소이 양과 허진이 씨

Q. 캠페인 초반에는 자립 이후에 느껴지는 시행착오나 어려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이제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정체성 이외에 개인이 갖고 있는 것들을 조명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 엄마 허진이 프로젝트로 보여지거든요. 엄마가 된 진이 씨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요?

A. 자립하면서 힘든건 내 편,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가족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정만 꾸리면 모든 시행착오는 이제 끝이고 우여곡절은 없을 거라고 믿었죠. 실제로 결혼을 해보니 자립준비청년으로서 새로운 숙제를 마주하게 됐어요. 결혼식부터 아이를 키우는 일 앞에서도 ‘사랑을 안 받았는데 내가 어떤 사랑을 줄 수 있고, 또 어떤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불안했고요. 처음 마주하게 되는 일 앞에서의 막막함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고 듣고 배운 게 도움이 됐던 만큼 이번에 들려드릴 저의 이야기가 그런 어떤 불안함을 좀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고백을 하게 된 거 같아요.

가족 밖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가 있다

Q. 엄마 허진이 프로젝트 페이지에서 어린이집에서 만난 엄마들에게 ‘부모님은 해외에 갔다’고 거짓말을 하게 됐다는 내용을 봤어요. 아이를 키우다보면 한국 사회의 공고한 ‘정상가족’ 프레임을 많이 느끼실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A. 제가 경계하는건 ‘가족주의’에 가까운 것 같아요. 삶의 어떤 이야기가 가족 ‘안으로만’ 귀결되는 것이요. 얼마 전 독서 모임을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 슬펐던 기억, 힘이 됐던 일화를 나눌 때 저는 친구, 선생님 이야기를 했거든요. 근데 일반 가정의 엄마들은 가족 이야기를 주로 하더라고요. ‘가족 안에서 충분한 경험을 하기 때문일까?’ 싶었어요. 그런데 저도 어느새 재밌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가족 안에서 쌓이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가족이 없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멀게 느껴지고요. 이런 걸 되게 경계하면서 딸인 소이한테도 가르쳐주려고 해요.

Q. 가족을 꾸리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과거의 경험을 다르게 해석하게 되는 일도 있을 것 같아요.

A. 어릴 때 ‘부모 없는 아이’라는 놀림을 받았어요. 당시에는 놀림을 받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젠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은 거예요. (아이를 키우다보니) 가족의 사랑을 받으면서 크는 아이들은 이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잖아요.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들을 불쌍하게 여긴다는게 이런 의미구나 싶었어요. 양육자가 의도적으로 ‘모든 사람은 사랑받기 위해 충분하다’라는 것들을 교육하지 않으면, 그러니까 내 새끼만 챙기면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허진이 프로젝트(자립강연) 오리엔테이션
허진이 프로젝트(자립강연) 오리엔테이션

Q. 진이 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중심이 단단한 사람, 나답게 사는 것을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자립준비청년들이 나답게 자립하기 위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야 되는 걸까요?

A. 나답게 자립하기 위해서는 잘 살고 싶은 의지를 갖는 게 되게 중요한데요. 이런 의지를 갖기 위해서는 타인과 연결이 되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타인이 삶의 중요한 변수라는 생각을 잊지 말고 계속 관계를 맺다보면 ‘나도 되게 저렇게 잘 살고 싶다’, ‘나는 이렇게 잘 살아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방황했던 시간이 누군가의 길이 되기를

Q. 진이 씨도 중심을 잡기까지 여러 시행착오를 경험하셨을까요?

A.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 갈등이 심했어요. 보육원에서 지내면서 못 해 본 것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으니 퇴소하면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대학생이 되고난 후 본분을 잃고 제가 하고 싶은 일만 집중을 하다 보니까 성적도 관리가 안 돼서 기숙사에서 쫓겨나고, 장학금도 못 받아서 자립준비정착금으로 등록금을 내야 했죠.

Q. 진이 씨가 이야기한 에피소드는 어찌보면 대학생들이라면 한번쯤 겪는 경험처럼 보여지는데 방황이라고 정의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누구에게나 있는 어떤 일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립준비청년에게는 허용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자립준비청년은 지원이 5년 이내 정도이고, 쓸 수 있는 자원도 정해져있으니까요. 저희끼리 막 그런 말도 하거든요. ‘방황할 거면 빨리 5년 이내로 끝내라’, ‘꿈 찾으려면 5년 이내로 찾아야 된다’ 세상의 시간이 방황을 용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보육원에서 내 꿈이 뭔지, 미래에 어떤 걸 그리고 싶은지 조금씩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방황을 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허진이 프로젝트(자립강연) 준비 현장에서
허진이 프로젝트(자립강연) 준비 현장에서

Q. 방황하면서 느낀 경험들이 있었기에 자립준비청년들의 ‘키다리 아줌마’를 자청하셨던게 아닐까 싶어요. 자립강연, 당사자를 위한 편지 작성, 독서모임 운영 등을 통해 큰 힘이 되어주셨고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기도 한데,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A. 사람을 만나는 일이 기쁘고 재밌으니까 계속하는 것 같아요. 허진이 프로젝트로 자립준비청년 7명을 인터뷰하고, 또 이들과 함께 보육원 강연 활동을 진행했거든요. 그 중 영아, 진명, 규환 씨가 인연이 되어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로 합류하게 되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과거 경험을 나누고 재정리를 하는 시간들을 보냈어요. 덕분에 자신의 모든 순간에 대해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진이 씨와 딸 소이양
진이 씨와 딸 소이 양

우리 사회에 그 정도의 다정함은 남아있지 않을까요?

Q. 지금의 진이 씨를 만든 여러 사랑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자라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과거의 경험을 공유해주신다면요?

A. 이 질문이 정말 어렵게 느껴졌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계기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진 않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잘 회복되고, 어떤 사람들은 기회가 너무 없어서 내리막길로 갈 수밖에 없잖아요. 자립준비청년은 그런 기회가 오지 않으면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는 무력한 상황이다보니 후원자나 곁에 있는 사람들이 삶의 중요한 계기가 돼요. 그래서 저는 매순간 다정하고 친절한 태도를 가지려고 하거든요. 주말에 지인들과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를 탈 일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게 노는 거예요. 계속 조용히 하라고 주의주고, 밖에 나갔다 오고 그랬어요. 옆에 계신 분들께도 실례를 범했다고 말씀드렸는데 눈을 감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아이들 소리가 너무 꾀꼬리 같아서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감동이잖아요. 저도 누군가에게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한다면, 그 사람은 그 기억을 안고 또 다른 사람한테 또 다른 힘을 주면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Q. 캠페인을 오래 진행해오셨으니 변화를 느끼고 체감하는 순간도 많으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또 더 필요한 지원이 있다면 무엇일지도 궁금합니다.

A. 요즘 자립준비청년 온라인 커뮤니티를 관리하고 있는데요. 지원사업 공고를 그대로 옮겨서 공유하고 있는데 확실히 개수도 많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졌어요. 또 하나는 제가 바람개비 서포터즈 활동으로 보육원에 멘토링을 하러 가는데 친구들이 주말마다 자립교육이 너무 많아졌다고, 제가 TV에 나와서 그런거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앞으로 사회에 필요한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다정함인 것 같아요. 아무 맥락과 서사도 없이 30살이 된 엄마가 자기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투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이 친구가 왜 이게 힘든지 왜 지금에서야 이런 고민을 하고 이런 고찰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해요. ‘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보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합니다. 엄마 허진이 프로젝트도 우리 사회에 ‘이 정도의 다정함은 있을 거야. 한번 들어봐 줄 수는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Q. 열여덟 어른 캠페인도 다정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면 좋을 것 같은데요. 진이 씨의 삶에 캠페인은 어떤 경험으로 남게 될까요?

A. 저는 자립준비청년으로서의 저와 허진이인 저는 다른 사람이라 생각하거든요. 자립준비청년인 저는 뭔가 무력하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서 헤맸던 막막함과 불안함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허진이는 당차고 밝고 되게 용감한 사람이에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그 때의 허진이를 당차고 밝은 허진이가 보듬어줬다고 생각해요.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열여덟 어른 캠페인 덕분에 과거의 허진이를 지금의 허진이가 돌봐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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